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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리번 5형제 미 해군 격침! 사건




 

설리번 5형제의 이야기

 

설리번 5형제의 이야기 이전에 상황을 먼저 아셔야 할 것입니다. 1941127일 일본의 진주만 기습은 미국을 2차 세계대전의 수렁에 빠지게 합니다. 이때의 기억을 상기시켜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은 진주만을 상기하라!!!!’라는 절규로 미국인들의 애국심에 불을 붙입니다. 그리하여 많은 젊은이들이 모병이 되었습니다.




 


이때, 설리반 5형제는 아이오와주 워털루 출신으로 이 전쟁에 참여하게 되는 강력한 동기부여가 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의 유일한 누이, 약혼자 윌리엄 볼이 진주만에서 침몰한 전함에 타고 있었다는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해군에서 복무한 전력이 있는 맏형 조지를 비롯해 프랭크, 조셉, 매디슨, 알버트까지 모두 자원입대를 합니다. 그러나, 미 해군에서는 가족을 같은 함정에 배치하지 않는다는 규칙이 있었으나 해군 장관에게 친필 편지를 써 우리 형제는 언제나 함께였고 함께 승리할 것입니다라고 보냅니다.




 

그리고 나서 미해군은 이 형제를 통해 더 홍보에 박차를 가할 수 있겠다고 판단하여 허락합니다. 이듬해인 1942년에 해군 훈련소에 같이 입대하여 훈련을 마친 뒤에 새로 취역하게 된 경순양함 주노에 배치가 됩니다. 이 곳에는 설리번 형제를 비롯한 코네티켓에서 온 로저 4형제도 있었고, 7쌍의 형제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을 태운 주노는 미군의 대반격이 시작될 때 솔로몬 제도의 구아들카낼에 도착하게 됩니다. 그 뒤에 설리번 형제는 마지막 전투를 치르는데 1113일 새벽, 수많은 함정들이 침몰해서 붙여진 별명인 철선들의 바닥이라는 해역에서 교전을 하다가 어둠속에서 적과 아군 식별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미 해군 7, 일 해군 5척의 전투함이 침몰하며 1,0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합니다.



주노


 

전투 시작 10분만에 일본의 어뢰가 주노에 폭격하고 이때까지만 해도 사상자가 별로 발생하지 않았으나, 주노는 전투력을 잃어 뱃머리를 돌리다가 잠항중이던 일본 해군의 어뢰가 주노의 탄약고에 명중하여 주노가 대폭발을 하게 됩니다. 그 중 맏형인 조지만이 살았고, 함대를 이끌던 길버트 후버 중령은 생존자를 구하지 않고 가버립니다.




 

형인 조지는 결국 이 상황에서 정신이상자가 되어 바다에 뛰어들고 사망하게 됩니다. 이듬해 설리번 부부는 이 소식을 듣게 됩니다. 그것도 직접 장관 앞으로 편지를 보내 상황을 알게 되나 실종이라는 소식만 들었고, 침몰에 대해 함구된 채로 전달받습니다.

 

그해 8월이 되어서 미 해군은 주노함의 침몰 사실을 인정하고 사상자를 발표했고, 설리번 부부를 위로합니다. 이후 해군은 설리번 부부에게 청년들을 격려하기를 요청했고, 그것을 받아들여 전시 공채를 팔고, 군에 입대하라는 격려를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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